한민족역사문화공원 : 새로운 한민족의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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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관순 열사 (1902년 ~ 1920년)

독립운동가, 순국열사
3.1 만세운동은 비폭력 저항운동의 인도의 간디,
중국의 손문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,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전 세계인구의 사분의 삼에 달하는 약소민족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.


순국하시면서 남긴 말씀

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이 100만 명만 있어도 우리나라가 독립을 할 수 있을 텐데...”


3.1 운동의 인물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‘한국의 잔다르크’이며 3.1운동의 꽃이라 불리는 유관순 열사입니다.
이곳에서 멀지 않은 아우내(병천)에 유관순 열사의 사우와 생가가 있습니다. 유관순열사의 사우에 가면 초혼묘(招魂墓)가 있습니다. 초혼묘라고 한 이유는 유관순 열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혼만 불러서 모셔드렸기 때문입니다.

유관순 열사가 순국하시면서 남긴 말씀 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이 100만 명만 있어도 우리나라가 독립을 할 수 있을 텐데...” 였습니다.
그 유해를 찾기 위해서 이화학당의 미국인 교장(플라이와 월터)이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가서도 유해를 받지 못했는데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겨우 유해를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. 그런데 처참하게도 여섯 토막이 난 시신이었다고 합니다. 그 시신을 가매장한 것을 나중에 일본 헌병대가 와서 파헤쳐서 지금도 유관순 열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.

그녀가 법정에 서서 일본인 판사에게 당당하게 한 말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.
“나는 한국 사람이다.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. 우리들이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는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.”

마지막 유언 또한 18살의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깊은 나라 사랑의 마음을 구구절절하게 표현해 놓았습니다.

"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, 내 귀와 코가 잘리고,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,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.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. "

3.1 만세운동은 비폭력저항운동으로서 인도의 간디, 중국의 손문 등에게 영향을 미쳤고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전 세계인구의 사분의 삼에 달하는 약소민족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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